도심의 한복판, 퇴근 시간의 도로는 숨 막히는 정체로 가득했다. 지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서연은 답답한 마음에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그녀는 한때 잘나가는 신문사에서 촉망받던 기자였지만, 요즘은 특종 가뭄에 시달리는 평범한 일상에 지쳐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불빛 속에서 서연은 문득 10년 전, 갑작스레 사라져버린 옛 여자친구 지은을 떠올렸다. 지은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서연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그때였다. 서연의 시선이 옆 차선에 멈춰 선 검은색 전기자동차로 향했다. 매끈하게 잘 빠진 차체, 그리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여성…
“지… 지은아?”
서연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이름이 튀어나왔다. 운전석에 앉은 여자는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10년 전, 자신의 곁을 떠났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이가 전혀 들지 않은 듯, 앳되면서도 맑은 눈빛. 지은이 분명했다. 똑같은 머리 스타일, 입술을 살짝 깨무는 습관까지.
서연은 심장이 쿵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피곤해서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10년이 지났으니 지은도 분명 서연처럼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을 텐데, 저렇게 완벽하게 옛 모습 그대로일 리 없었다. 혹시 지은과 너무나도 닮은 사람인가?
서연은 황급히 눈을 비볐다가 다시 뜨며 옆 차선의 차량을 응시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지은의 모습. 그녀는 미세하게 고개를 움직이며 백미러를 확인하는 듯했다. 그 익숙한 움직임에 서연의 심장이 더욱 격렬하게 뛰었다.
‘말도 안 돼… 내가 너무 피곤해서 환각을 보는 거야.’
서연은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바쁜 일상과 채워지지 않는 마음이 만들어낸 환영일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하지만 눈앞의 모습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지은이 입고 있는 단정한 흰색 블라우스, 목에 두른 얇은 스카프까지 모든 것이 마치 어제 본 것처럼 생생했다.
바로 그때, 앞차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고, 지은이 탄 전기자동차도 서서히 앞으로 나아갔다. 서연은 무의식적으로 액셀을 밟아 그 차를 따라갔다.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했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고, 환각이라면 이렇게까지 생생할 리 없었다.
지은의 모습이 담긴 자동차가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사라지는 순간까지, 서연은 멍하니 그 뒷모습을 쫓았다.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진정되지 않았다. ‘헛것을 본 게 아니라면… 그럼 저건 대체…?’ 서연은 운전대를 꽉 쥔 채, 자신이 마주한 믿을 수 없는 장면에 깊은 고뇌에 빠졌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순간이었다.[5:1]
며칠 뒤, 서연은 믿을 수 없는 재회를 꿈이 아닌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문제의 전기자동차를 다시 찾아 나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외워두었던 차량 번호를 되짚으며 도심의 주차장들을 헤매던 서연의 눈에, 익숙한 검은색 차체가 들어왔다. 그 차는 한적한 골목 어귀에 자리한 작은 상점가 주차장에 얌전히 주차되어 있었다.
서연의 심장이 다시금 요동쳤다. 그리고 운전석에는 지난번과 똑같은, 전혀 나이 들지 않은 지은의 모습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루아, 즉 지은은 앞서 서연을 마주쳤을 때 그녀가 자신을 알아보았을까 봐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지금 그녀는 장을 보러 간 무녀들을 기다리는 중이었고, 본체인 자동차에서 멀리 떨어질 수 없는 분신 상태였기에 꼼짝없이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연은 조심스럽게 차에 다가가 창문을 두드렸다.
“지은아…?”
루아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피할 수 없는 순간이었다. 분신인 자신은 본체인 차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서연은 이미 자신의 얼굴을 정확히 알아본 듯했다. 루아는 천천히 창문을 내렸다. 차가운 바람과 함께 서연의 놀란 얼굴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너… 정말 지은이니? 어떻게 된 거야? 너 10년 전에 갑자기 사라졌잖아… 왜 그대로인 거야? 어떻게….”
서연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에는 혼란과 그리움,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루아는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으려 했지만, 10년 만에 마주한 옛 여자친구의 얼굴은 그녀의 마음을 흔들었다.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루아는 가늘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서연아. 나 지은이 맞아.”
그 한마디에 서연의 눈가가 붉어졌다. 그녀는 손을 뻗어 루아의 뺨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그 존재를 확인하려는 몸짓이었다. 피부에 닿는 온기는 너무나도 현실적이었다.
“진짜… 진짜 너구나… 널 얼마나 찾아다녔는데…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서연은 울먹이며 질문을 쏟아냈지만, 루아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신사의 비밀은 그 어떤 말로도 발설할 수 없었다. 이대로 모든 것을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다시 사라질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이었다. 루아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스쳤다.
서연은 루아의 침묵 속에서 무언가 평범하지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 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유를 따지기보다, 눈앞의 존재가 지은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다. 10년의 공백을 뛰어넘어, 두 사람의 재회가 그렇게 시작되었다.[5:2]
뜨거운 여름 햇살이 아스팔트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10년 만에 마주한 지은의 얼굴에 당혹감과 반가움이 뒤섞인 서연은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루아는 서연의 복잡한 표정을 읽으며 안타까움을 느꼈다. 신사의 비밀을 모두 말해줄 수 없다는 사실이 그녀를 답답하게 했다.
“서연아, 일단 차 안으로 들어와. 너무 더워.”
루아는 운전석의 분신을 통해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 서연은 잠시 망설이다가 차 안으로 들어섰다.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서연의 달아오른 뺨을 스쳤다. 루아의 분신은 조용히 운전석에 앉아 서연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말해줄 수는 없어. 하지만… 나는 이제 무녀가 되었어.”
루아는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서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녀’라는 단어는 그녀의 상상 범주를 훨씬 벗어나는 것이었다.
“무녀…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리고… 너 왜 하나도 안 늙었어? 10년 전이랑 똑같잖아!”
서연의 질문에 루아는 애써 침착하게 답했다.
“나도 자세한 건 모르지만… 무녀가 되고 나서부터 성장이 멈춘 것 같아. 그래서 이 모습 그대로야.”
루아는 조수석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지금은 다른 무녀들이 저기 상점에서 장을 보고 오는 걸 기다리는 중이야. 그래서 여기 이렇게 앉아 있었어.”
서연은 루아의 설명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말이 거짓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다. 어딘가 초연해진 듯한 루아의 눈빛이 그 증거였다. 서연은 문득 중요한 것이 떠올라 물었다.
“부모님은… 부모님은 만나 뵀어? 너 갑자기 사라져서 두 분이 얼마나 걱정하셨는데….”
루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몇 년에 한 번 정도는 뵙고 있어. 다행히 이제는 조금 안심하고 계셔.”
루아의 말에 서연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루아가 가족들과 연락을 끊고 홀로 지내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서연은 루아의 손을 잡고 그녀가 사라진 지난 10년의 시간을 어렴풋이 그려보려 애썼다.
“넌 그럼… 지금 뭘 하고 지내? 혹시 학생이야? 아니면… 다른 일을 하는 거야?”
루아의 질문에 서연은 짧게 웃었다. 그녀는 복잡한 마음을 애써 감추려 했다.
“난 지금 기자 일을 하고 있어. 매일 마감에 쫓기고, 특종을 찾아 뛰어다니고… 뭐, 평범한 직장인의 삶이지.”
서연의 목소리에는 일상에 지친 듯한 기색이 묻어났다. 10년 전, 똑같은 학생이었던 두 사람의 삶이 이제는 극명하게 달라져 있음을 서로가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차 안에는 짧은 침묵이 흘렀다.[5:3]
루아가 변신한 전기자동차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 어색했던 침묵이 채 가시기도 전에 서연은 차 내부를 둘러보았다. 깔끔하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인, 디지털 계기판, 그리고 최신 기술이 집약된 듯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까지. 영락없는 최고급 세단이었다.
“차… 좋다. 최신형 전기차인가 보네. 그런데 무녀가 이런 차를 몰고 다니는구나. 어쩐지 좀 의외다?”
서연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루아가 ’무녀’라는 말을 꺼낸 뒤로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웠지만, 눈앞의 이 차가 지은의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변치 않는 듯했다.
서연의 칭찬에 루아는 내심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몸을 칭찬받는 것은 언제나 유쾌한 일이었다. 루아는 본체인 자동차를 통해 서연에게 마치 자신이 직접 설명하는 것처럼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응, 최신 기술이 많이 적용된 모델이야. 배터리 효율이 굉장히 좋아서 한 번 충전하면 꽤 먼 거리도 문제없어. 그리고 고속 충전도 지원해서 짧은 시간에 많은 에너지를 채울 수 있지.”
루아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무엇보다 이 차는 자율 주행 기능이 거의 완벽에 가까워. 센서가 사방에 달려 있어서 주변 상황을 360도로 파악하고, 돌발 상황에도 스스로 판단해서 대처할 수 있지. 그래서 운전 피로도가 훨씬 적어. 또, 실내 공기 정화 시스템도 뛰어나고, 오디오 시스템은…”
루아는 신이 나서 자신의 ’몸’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녀는 자신이 변신해서 만들어진 차라는 사실은 당연히 숨긴 채, 마치 자동차 전문가라도 되는 양 온갖 기능과 장점을 술술 읊었다. 충전 방식부터 모터 출력, 서스펜션의 종류, 심지어 내장재의 특성까지, 듣는 서연이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다.
서연은 처음에는 루아의 뜻밖의 ’자동차 지식’에 살짝 당황했다. 갑작스러운 만남과 무녀라는 알 수 없는 배경 속에서, 지은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쉬지 않고 이어지는 루아의 설명을 들으며, 서연의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역시 지은이구나. 변하지 않았어.’
학생 시절, 지은은 한번 흥미가 생긴 분야에 대해서는 며칠 밤을 새워 공부하고 와서 친구들에게 끝없이 설명하던 수다쟁이였다.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이는 들지 않았지만, 본질은 변치 않은 지은의 모습에 서연은 비로소 안심했다. 복잡했던 머릿속이 조금은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비록 아직은 알 수 없는 비밀에 싸여 있지만, 최소한 눈앞의 이 사람은 자신이 알던 ’지은’이 틀림없었다.[5:4]
얼마 지나지 않아 장을 본 무녀들이 상점에서 나왔다. 별이는 샘이와 함께 양손 가득 봉투를 든 채 차로 다가왔다. 차 문을 열다 서연을 발견한 별이는 살짝 놀란 눈치였지만, 이내 루아의 텔레파시를 받았는지 자연스럽게 미소 지었다.
“어서 오세요.”
별이의 가벼운 인사와 함께 샘이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서연을 바라보았다. 서연은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답했다. 무녀들은 능숙하게 짐을 싣고 차에 올랐다. 샘이는 조수석에 앉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서연을 빤히 쳐다보았다. 루아는 별이에게 눈짓을 보냈고, 별이는 부드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이만 가볼게요.”
별이의 말에 루아는 서연을 향해 짧게 미소 지었다. “잘 가, 서연아. 다음에… 또 보자.”
그것은 짧은 만남과 어색한 헤어짐이었다. 루아의 몸인 전기자동차는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나가 골목길을 따라 사라졌다. 서연은 차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차가 사라지고 난 뒤, 서연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10년 만에 다시 만난 지은, 그것도 시간이 멈춘 듯 예전 모습 그대로의 지은. 그리고 그녀가 ’무녀’라는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어 이상한 차를 몰고 다니며, 또 다른 어린 소녀들과 함께 있다는 사실. 모든 것이 미스터리였다.
‘도대체… 무슨 신사인 거지? 지은이가 말한 무녀라는 게 대체 뭔데?’
서연의 머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 찼다. 그녀의 직업병인 기자 정신이 발동하여 모든 것을 파헤치고 싶다는 충동에 휩싸였다. 지은이 사라진 10년의 공백, 그리고 그녀가 간직한 알 수 없는 비밀들이 서연의 호기심을 한없이 자극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서연의 마음 한편에서는 안도감이 밀려들었다. 10년 전, 지은이 사라진 뒤 서연은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혹시 나쁜 일이라도 당한 것은 아닐까 늘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오늘 만난 지은은 비록 이상한 상황에 놓여 있었지만, 건강하고 밝은 모습이었다. 부모님과도 몇 년에 한 번씩은 만난다는 말에 서연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래도… 잘 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다.’
안도감과 깊어진 의문이 교차하며 서연은 자신의 차로 향했다. 그녀의 기자 인생에서 가장 거대하고 풀기 어려운 ’특종’이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았다. 서연은 언젠가 이 모든 비밀을 파헤칠 날이 오기를 바라며, 다시금 현실의 삶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신비로운 무녀들의 세계에 깊이 사로잡혀 있었다.[5:5]
장을 마치고 신사로 돌아온 루아는 본체인 자동차에서 나와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곧바로 큰 무녀님의 거처로 향했다. 큰 무녀님은 평소처럼 고요히 앉아 계셨지만, 루아는 그녀의 눈빛 속에서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이를 느꼈다.
“잘 돌아왔구나, 루아. 그리고 오늘 대처도 아주 슬기로웠다.”
큰 무녀님의 칭찬에 루아는 살짝 놀랐다. 물론 서연과의 재회에 대해 보고할 생각이었지만, 큰 무녀님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듯했다. 루아는 자신의 얼굴에 스쳤던 당혹감과 복잡한 감정까지도 큰 무녀님이 아셨을까 싶어 뺨이 살짝 달아올랐다.
“서연이라는 아이 말이다.” 큰 무녀님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아이는 비록 무녀가 되지는 못할지라도, 언젠가 우리 신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앞으로도 그 아이와 잘 지내려무나.”
루아의 눈이 커졌다. 서연이 신사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큰 무녀님의 말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서연은 평범한 인간이었고, 기자로서 신사의 비밀을 파헤치려 할 수도 있는 존재였다. 하지만 큰 무녀님은 그녀에게 미래의 ’조력자’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있었다.
루아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큰 무녀님… 혹시 이 사실도… 시간의 신사에서 받은 정보입니까?”
큰 무녀님은 루아의 질문에 아무런 답도 주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 미소는 모든 것을 알고 있지만, 모든 것을 말해줄 수는 없는 존재의 신비로움을 담고 있었다.
“글쎄다.”
큰 무녀님은 그 한마디만을 남기고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았다. 루아는 그녀의 미소 속에서 답을 찾으려 했지만, 결국 그 깊은 뜻을 헤아릴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큰 무녀님의 말씀은 늘 현실이 되었다는 것이다.
루아는 큰 무녀님의 거처를 나서며 서연을 다시 떠올렸다. 기자로서의 서연이 신사에 어떤 방식으로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큰 무녀님의 말씀대로, 그녀는 언젠가 다가올 ‘큰 혼란의 시기’ 속에서 서연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막연한 예감을 갖게 되었다. 신비로운 미래는 알 수 없었지만, 루아는 다가올 모든 것을 대비할 준비를 했다.[5:6]
지은과의 재회는 서연의 기자 본능에 불을 지폈다. 그녀는 더 이상 단순한 우연이나 환각으로 이 상황을 치부할 수 없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지은이 몰던 그 전기자동차의 정체를 파악하는 것이었다.
서연은 기억하고 있던 차 번호와 차량 모델명을 토대로 취재에 나섰다. 기자로서의 인맥과 정보력을 총동원하여 차량 등록 정보를 조회하기 시작했다. 비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얻은 정보였기에 조심스러웠지만, 그녀의 직업 윤리는 이 미스터리를 파헤쳐야 한다고 외치고 있었다.
며칠 후, 그녀의 손에는 문제의 차량에 대한 정보가 담긴 서류가 들려 있었다. 서연은 숨을 들이쉬며 서류의 내용을 확인했다. 차종과 모델명, 그리고 차대번호까지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런데 ‘최초 등록일’ 항목에서 서연의 눈이 멈췄다.
최초 등록일: 13년 8개월 전.
서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녀는 자신이 틀림없이 지은이 몰던 차가 최신형 전기자동차 모델임을 확인했다. 그 모델은 아무리 빨라도 3년 전에야 처음 출시되었다는 것을 그녀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자동차 전문 기자 친구에게 문의까지 해서 확인했던 사실이었다.
‘말도 안 돼… 이 차는 고작 3년밖에 안 된 모델인데, 등록은 13년도 전에 됐다고?’
서연은 서류를 다시 한번 꼼꼼히 살폈다. 차량 모델명, 제조사, 생산 연도, 그리고 최초 등록일… 모든 정보가 완벽하게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이 정보는 모순덩어리였다. 13년 전에는 지금의 전기자동차 모델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차량의 소유주 정보를 확인했다. 소유주는 ’개인정보 보호법에 의거 열람 제한’이라는 문구만 떴다. 그러나 최초 등록 시의 소유주는 분명 ’김지은’으로 되어 있었다. 이 부분은 그녀가 알던 지은의 정보와 일치했다.
서연은 머리가 복잡해졌다.
‘혹시 차량 등록 정보가 잘못된 건가? 아니면… 이 차가 뭔가 특별한 방식으로 등록된 건가? 아니면 지은이가 그때부터…?’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자동차가 10년 넘게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다가 갑자기 최신형 전기자동차로 ’변했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서류 어디에도 그 사이에 ’차종 변경’이나 ’모델 변경’과 같은 특이 사항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마치 이 차가 처음부터 그 모습 그대로 13년 넘게 존재했던 것처럼 보였다.
평생을 이성과 논리에 기반한 사실만을 추구해온 기자 서연의 세계관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직감은 이 문제가 단순한 오류가 아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한 비밀과 연관되어 있음을 강력하게 속삭이고 있었다. 지은과 신사, 그리고 이 시간을 거스르는 듯한 자동차… 모든 조각들이 뒤죽박죽 섞여 그녀를 미궁으로 이끌고 있었다.[5:7]
서류를 손에 든 채, 서연은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을 느꼈다. 상식적으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자동차 등록 정보는 그녀의 이성을 마비시키는 듯했다. ’13년 전에 등록된 최신형 전기차’라는 모순이 머릿속을 맴돌며 그녀를 괴롭혔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서연은 한밤중에 차를 몰고 강변으로 나섰다. 어둠이 깔린 강물 위로 도시의 불빛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시원한 강바람이 차창을 통해 들어왔지만, 그녀의 머릿속은 여전히 혼돈 그 자체였다. 그녀는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지난 만남을 되짚었다.
지은은 분명 10년 전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몰던(혹은 타고 있던) 그 전기자동차는 분명 최신 모델이었다. 그런데 등록 기록은 10년이 넘었다. 이 모든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수많은 가설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착각, 조작된 정보, 위장된 신분…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완벽하게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그때였다. 강물 위를 비추는 가로등 불빛처럼, 서연의 머릿속에 섬광 같은 아이디어가 스쳤다.
‘만약… 그 차가 매번 필요에 따라 새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 순간, 모든 퍼즐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했다.
지은이 매번 ‘같은’ 차를 가지고 다니지만, 그 차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3년 전 출시된 모델이 13년 전에 등록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이유가 설명되었다. 만약 누군가가 13년 전, 특정 차량의 등록 정보를 먼저 확보해 둔 채, 필요할 때마다 그 정보에 맞춰 동일한 차종의 최신 모델을 ’만들어 낸다’면 어떨까?
이 가설은 지은이 왜 10년이 지나도 늙지 않았는지에 대한 실마리도 제공하는 듯했다. 평범한 인간이 아닌, 무언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라면, 자신조차도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있는 건 아닐까?
서연의 심장이 다시 격렬하게 뛰었다. 이는 단순한 논리적 추론이 아니었다. 그녀가 아는 상식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는, 거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한 추측이었다. 지은이 말했던 ’무녀’라는 단어와 겹쳐지면서, 서연은 그들이 단순히 종교적인 의미의 무녀가 아님을 직감했다. 그들은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무언가를 창조하거나 변형시킬 수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었다.
어둠 속 강변에서, 서연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비현실적인 가능성을 마주했다. 머리의 두통은 사라지고, 대신 전율이 그녀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이 모든 미스터리가 풀릴 열쇠를 이제 막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은, 그리고 그 신사의 비밀에 한 발짝 더 다가선 순간이었다.[5:8]
며칠 뒤, 큰 무녀님은 루아를 불러냈다.
“루아, 요즘 네 얼굴에 걱정이 많아 보이는구나. 기분 전환이라도 할 겸 드라이브라도 다녀오렴.”
큰 무녀님의 말씀에 루아는 서연을 떠올렸다. ‘혹시 또 마주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스쳤지만, 큰 무녀님의 뜻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루아는 자신의 몸을 최신형 전기자동차로 변신시키고 운전석에 분신을 앉혔다.
아니나 다를까, 시내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서연이었다. 그녀는 작은 카메라를 들고 주차된 차량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살피고 있었다. 루아의 차를 발견하자마자 서연의 눈이 빛났다. 서연은 재빨리 다가와 루아의 차창을 두드렸다.
루아는 창문을 내리며 애써 무표정한 얼굴을 지었다.
“서연아, 너 왜 또 이러고 있어? 내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몰래 찾아다녀?”
루아는 손사래를 쳤지만, 서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야. 그런데 마침 드라이브 나가는 길이었나 보네? 나도 같이 가면 안 될까?”
서연의 제안에 루아는 난감했지만, 딱히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결국 그녀는 서연을 조수석에 태웠다.
차는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교외 도로를 달리기 시작했다. 서연은 루아의 분신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결심한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은아, 지난번에 네 차 등록 정보 알아봤거든. 그런데 말이 안 돼. 이 차는 분명 최신 모델인데, 등록은 10년도 더 전에 되어 있더라? 그래서 생각했는데… 너희 신사에서 하는 일이 혹시… 물건을 마음대로 만들어 내는 거니?”
서연의 직접적인 질문에 루아는 순간 흠칫했다. 그녀는 자신이 그간 너무 아무 생각 없이 최신형 자동차로 변신했음을 깨달았다. 더 이상 피하기는 어렵겠다고 판단한 루아는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서연아… 내가 지금부터 하는 말은… 네가 믿기 힘들 거야. 하지만… 사실이야.”
루아는 결심한 듯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는… 무녀야. 그리고 우리는… 물건을 만드는 것을 넘어… 우리 자신이 바로 그 물건이 될 수 있어.”
서연의 눈이 커졌다. 그녀는 루아의 말을 이해하려 애썼지만, 머릿속은 온통 혼란뿐이었다.
“우리 자신이… 물건이 된다고? 그게 무슨 말이야, 지은아? 지금 네가 타고 있는 이 차가… 네가 만들었다는 거야?”
루아는 고개를 저었다. 서연의 표정에는 믿지 못하겠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루아는 이제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보여주는 것이 빠르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계기판의 배터리 잔량이 빨간색으로 깜빡이고 있었다.
“아니, 서연아. 이 차는 내가 만든 게 아니야. 지금 네가 타고 있는 이 자동차가 바로 나 자신이야. 그리고 이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는… 나의 분신이고.”
서연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녀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의 옛 여자친구가 눈앞에서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믿지 못하겠지? 직접 보여줄게. 마침 배터리가 떨어져 가고 있기도 하고.”
루아는 마침 나타난 드라이브 스루 햄버거 매장으로 차를 몰았다. 그녀는 햄버거와 콜라 세트를 주문하고, 잠시 후 따끈한 햄버거를 받아 들었다. 루아의 분신은 아무렇지 않은 듯 햄버거를 맛있게 베어 물었다.
그 순간이었다.
서연의 시선은 루아가 햄버거를 먹는 모습과 동시에 계기판의 배터리 잔량을 향했다. 보통이라면 충전기에 연결해야만 올라가는 숫자가, 루아의 분신이 햄버거를 한입 베어 물 때마다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차오르기 시작했다. 배터리 잔량은 놀랍게도 70%, 75%, 80%… 점점 늘어났다. 그 어떤 충전 연결도 없었다. 루아의 분신이 햄버거를 한입 더 크게 베어 물자, 배터리 잔량은 90%를 넘어섰다.
서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계기판과 햄버거를 먹는 루아의 분신을 번갈아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이 기적은 그녀의 상상력을 훨씬 초월하는 것이었다.
햄버거를 다 먹자, 루아의 분신은 만족스럽게 입가를 닦았다. 계기판의 배터리 잔량은 어느새 100%를 가리키고 있었다. 완벽하게 충전된 상태였다.
“어때? 이제 좀 믿겠어?”
루아의 분신이 미소 지으며 물었다. 서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몸에는 전율이 흘렀다. 자신의 생각 이상의,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진실이 눈앞에서 벌어진 순간이었다. 평생을 이성과 논리만으로 살아왔던 기자 서연의 세계는 산산조각 났다. 그녀는 자신이 발을 딛고 있는 현실 자체가 믿을 수 없는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며, 충격과 경외감 속에서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5:9]
루아의 분신이 햄버거를 먹는 동안 자동차의 배터리가 완벽하게 충전되는 광경을 목격한 서연은 말 그대로 전율했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듯한 충격 속에서도 그녀의 머리는 놀랍도록 빠르게 돌아갔다. 지은이 ’무녀’이고, ’자신이 곧 차’라는 기가 막힌 진실. 그리고 이 능력은 세상에 알려져서는 안 되는, 너무나도 거대한 비밀이라는 것을 서연은 직관적으로 이해했다.
만약 이 사실이 세상에 공개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학자들은 달려들어 이들을 해부하려 할 것이고, 군사 전문가들은 무기화하려 들 것이다. 종교계는 자신들의 교리와 비교하며 혼란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지은과 그녀의 동료 무녀들은 더 이상 평범한 존재로 살아갈 수 없을 터였다. 오히려 생명과 존재 자체를 위협받게 될 것이었다.
서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지은아… 이… 이건….”
그녀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루아는 서연의 눈빛에서 모든 것을 읽었다. 경악, 충격, 그리고 동시에 깊은 이해와 다짐.
서연은 이내 주먹을 꽉 쥐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맹세코… 이 비밀을 지킬게. 절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야.”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 없었다. 단순한 맹세가 아니라, 지은을 향한 진심과 기자로서의 윤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약속이었다.
서연의 진심 어린 맹세에 루아는 안도했다. 그녀는 그제야 긴장이 풀리는 듯, 운전석의 분신이 쑥스러운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고마워, 서연아. 사실 네가 자꾸 찾아와서 좀… 당황했거든.”
루아는 슬쩍 웃으며 덧붙였다.
“앞으로는 나도 변신할 때… 좀 더 신경 써야겠다. 너무 최신형만 고집했나 봐.”
그녀의 말에는 서연의 끈질긴 추적에 대한 귀여운 핀잔과 함께, 이제는 서연이 신사의 비밀을 이해하고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담겨 있었다. 서연은 루아의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전까지 세상을 뒤흔들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은의 변함없는 모습과 소박한 반응은 그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해주었다.
이제 서연에게는 풀리지 않는 숙제 같은 지은이 아닌, 어떠한 상황에도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가 생겼다. 그들의 관계는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나아갔지만, 그 속에는 변치 않는 깊은 신뢰가 싹트고 있었다.[5:10]
같은 시각, 신사 경계에 설치된 우편함. 늘 단정한 무녀복을 입고 신사 주변을 살피던 하연은 우편함을 열었다. 매일같이 평범한 마을 소식이나 계절 인사 같은 편지만이 들어있던 우편함이었기에, 그녀는 오늘도 습관처럼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하연의 손에 들린 편지 한 통에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편지는 낡고 투박한 일반 우편물이 아니었다. 매끈한 질감의 고급 용지, 그리고 봉투 한쪽에는 도시에서나 볼 법한 거대한 건물의 로고와 함께 ’XX 건축 회사’라는 발신인 명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 신비로운 산속 신사로, 외부의 대형 건축 회사에서 편지를 보냈다는 사실 자체가 하연에게는 충격이었다. 더욱이, 그녀의 감각은 이 편지가 단순한 사업 문의를 넘어선, 심상치 않은 내용을 담고 있음을 직감했다.
하연은 편지를 든 채 망설일 틈도 없이 신사 본당을 향해 전력을 다해 달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놀라움과 함께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큰 무녀님의 거처. 하연이 급하게 달려오는 기척을 감지한 큰 무녀님은 이미 모든 것을 짐작한 듯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녀의 의식 속에는 이미 외부 세계에서 건너온 편지의 내용, 그리고 그 편지가 의미하는 바가 희미하게나마 그려지고 있었다. 특히 루아가 서연을 통해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까지도.
‘결국 시작되었구나. 다가올 큰 혼란의 시기가….’
큰 무녀님은 속으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루아가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으니, 안심이다.’
하연은 큰 무녀님 앞에 다다르자마자 숨을 헐떡이며 편지를 내밀었다.
“큰 무녀님! 이… 이런 편지가…! 외부에서…!”
큰 무녀님은 눈을 뜨고 하연의 손에서 편지를 건네받았다. 그녀의 손길은 더없이 차분하고 우아했다. 봉투를 뜯고 편지 내용을 읽기 시작하는 큰 무녀님의 얼굴에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깊은 통찰력과 고요한 평온함이 서려 있었다.[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