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속 무녀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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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녀 생활 가이드〉에 대한 서한

명아 선배께,

선배님께서 힘써 만드신 무녀 생활 안내서를 읽었습니다. 처음에 ’가이드’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나, 앞뒤 문맥을 미루어 보아 ’길잡이’나 ’안내서’를 일컫는다는 것을 이내 짐작하였습니다. 책을 펼쳐 들고 읽어 내리는 내내, 선배님의 깊은 지식과 무녀에 대한 깊은 애정이 글 사이사이에 스며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특히 충실도와 이해도에 대한 설명은 제가 현신하던 시절보다 훨씬 더 체계가 잡혀 있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루아나 샘이 같은 어린 무녀들에게 큰 도움이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허나, 선배님. 제게는 이 안내서에 한 가지 큰 아쉬움이 남습니다. 안내서는 ’새로이 무녀가 된 이들’을 위한 것이라 하시면서, 어째서 저처럼 오랜 형벌에서 벗어나 다시 무녀가 된 이를 위한 내용은 없는 것입니까?

저는 분명 가장 오랜 무녀 중 하나이지만, 육체가 주전자로 변해버린 지난 육백오십여 년의 시간 동안, 세상의 이치와 무녀로서의 삶은 너무나도 크게 변모하였습니다. 변신 능력은 여전하지만, 몸이 땅에 닿지 않고 붕 떠오르는 감각이나, 찻잎이 물에 우러나듯 제 안의 기운이 퍼져나가는 느낌은 도무지 적응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본 세상은 수백 년 전의 세상인데, 지금의 세상은 너무나도 다릅니다. 이리 적응하기 어려운 세상에서 다시 무녀로 살아가는 방법에 대한 조언은 왜 없는지, 저는 무척 궁금합니다.

제가 알기로는, 제 형벌이 유일하게 유한했습니다. 아마 저와 같은 이는 다시는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내서라는 것은 보다 다양한 독자층을 아우를 수 있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당장 이 지면에 모든 것을 담으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소수의 특별한 경우를 위한 배려 또한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혹시라도 저와 같이 특이한 경험을 한 무녀가 있다면, 그들을 위한 작은 조언이라도 포함된다면 이 안내서는 더욱 완전한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주전자로 지내는 동안, 큰 무녀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와 새로이 접한 글들을 통해 이 땅의 새로운 문자와 말씨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이 편지를 예전처럼 한문으로 쓰지 않고도 선배님께 전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제 편지가 혹 선배님의 노고에 작은 상처라도 주었다면 부디 너그러이 헤아려 주십시오. 다만, 이 안내서가 무녀들에게 더욱 빛나는 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드린 말씀임을 알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평안하십시오.

서리 올림[C:1]